카디루민

"충!성!"


짧은 경례가 울렸다. 철모를 야무지게 눌러써 눈이 보이지 않는 탓에 표정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 기에 눌려 괜히 어깨가 움추러든 경수가 재빨리 손을
올려 경례하자 종인이 손에 든 클립보드를 잠시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충성."

경수의 긴장된 목소리와 달리 종인의 목소리는 경례가 익숙한듯 담담했다. 종인은 육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였고, 경수는 이제 막 사관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
훈련병이었다. 입교를 위해 한달 남짓한 훈련을 거쳐야하는 훈련병과 곧 자신의 후배로 입교하게 될 훈련병들을 훈련시킬 지휘근무생도였다.

시간은 이제 막 훈련의 일주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뻘뻘 땀을 흘리며 뛰는 아침구보도, 허겁지겁 먹느라 체하기 일쑤인 식사시간도, 잠이 많은
경수에게는 여전히 고역이었다. 다른 훈련들이야 이 꽉 물고 견뎌보겠는데 아침에 기상 후 찾아오는 두통은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연병장을 돈 뒤 꾸역꾸역 아침 식사를 집어넣으면 위가 반항하듯 다시 올려보내기 일쑤였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잠들기 전에 확인한 스케줄 표에서 오늘이 금요일이라고 했었던게 분명했다. 금요일인 것을 알아채서인지, 경수에겐
5일의 피로가 누적되어 더욱 몸이 무거운 아침처럼 느껴졌다. 일어나자마자 빠른 속도로 침상정리를 마친 뒤 무거운 전투화에 발을 끼어 넣었다.
두통탓에 잠시 휘청이는 경수를 앉혀놓고 같은 호실을 쓰는 동기들이 전투화 끈을 매어주었다.

"집합시간 몇십니까, 훈련병들 시간 맞춰 집합하도록 한다."

잠이 덜 깬 아침마다 또랑또랑하게 울려오는 목소리에 경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혹여나 동기들에게 누가 될까, 달리는 동기들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이 좋다고, 누가 그랬는가.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지도 못하고 대형을 맞추어 뛰는 일은 몇배로 힘이 들었다.
홀로 뛰는 것이었다면 속도 조절이라도 하련만, 자칫하면 자신때문에 대형이 망가져 단체 기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쓰러져서 실려가는 편이 백배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먹을 다시금 꼬옥 말아쥐는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38번 훈련병, 뒤로 열외합니다."

"..38번 훈련병! 열외!"


지휘근무생도였다. 경수가 잠깐 옆으로 빠지고 줄을 맞춘 대형이 앞으로 빠질동안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두어번쯤 몰아쉬었을까, 금세 대형이
앞으로 빠지고 경수도 무거운 몸을 이끌며 대형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열외시킨 분대장의 의도를 알지 못했음에도 감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떤 이유든지 간에 대형 속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두통이 심한가?"

"..예?"

"두통이 심하냐고 물었다."

"..아, 조금 심,한 것..같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대답하기도 힘겨웠다.

"앞으로는 본생도가 묻지않아도 보고하도록 한다."

예, 하고 대답하려는 찰나 투박한 손이 등허리춤에 닿았다. 당황한 경수가 옆을 돌아보았으나 여전히 철모로 얼굴을 숨긴 종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경수의 몸을 한손으로 밀고 있는 팔에 힘이 실렸다. 감사합니다라고 해야하나, 혼란스러운 경수의 머릿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인의 꽉 다문 입술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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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때 김종인. 내가 훅 반했었는데."

"왜. 지금도 김종인 그때랑 똑같잖아, 말 없고. 고지식하고."

잔잔한 카페에 남자 넷이 둘러앉아 있었다. 여자들과 커플들이 가득한 카페 한 가온데 남자 넷은 어찌보면 굉장히 어색한 존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작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넷은 자신들의 집인 마냥 익숙해보였다.

"그 땐 김종인이 나보다 어린 놈이었는지도 몰랐지."

어린 놈,이라는 단어에 종인이 멍하니 휴대폰을 만지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경수의 머리에 콩하니 딱밤을 때렸다.
아, 왜! 발끈하는 경수를 종인은 흘끗 보더니 다시금 휴대폰에 시선을 두었다. 종인을 살짝 째려본 경수가 언제 눈을 흘겼냐는 듯이 다시 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수의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남자 둘은 여전히 흥미롭고 귀엽다는 눈빛으로 경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김종인이 그 때 뭐라했냐면,"

"두통이 심한가?"

"그래그래, 그랬어. 그 말투 알지, 딱 군인말투."

"알지. 너한테 한 다섯번째 듣는 것 같은데."

"아니이, 한이는 못들었잖아. 한아 중국에도 군대같은 거 있나?"

바보같은 질문에 옆에서 잠자코 있던 종인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잊을 법한 과거도 몇번을 되새기는지, 진절머리 나도록 사랑스러운 애인이었다.

"도경수, 두통이 심한가?"

한쪽 입꼬리를 스윽 당기며 경수의 이마를 장난스레 짚은 채로, 몇년 전 그 대사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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